원화는 누군가에게 조작당하고 있을까....?
- 환율이 왔다갔다 하는것을 보고 과거에 있었던 투자와 투기 사례와 비슷하게 우리나라에 어떤 유무형의 힘이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 혹은 작용한다면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
가설
조작이라는 단어는 분석할 수 없다. 검증 가능한 질문으로 쪼개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네 가지 가설을 세웠다.
H1 — 역외 지배 가설
원화는 싱가포르·홍콩·런던의 NDF(역외 차액결제선물환) 시장에서 글로벌 은행과 헤지펀드들이 활발히 거래한다. 만약 이 역외 세력이 가격을 실질적으로 결정한다면, 한국 장이 닫혀 있는 시간대에 원화 변동이 더 격렬해야 한다. 시간당 변동 강도를 "한국 장 시간(09-16 KST)"과 "장 외 시간"으로 분리해 측정한다.
H2 — CFTC 투기 포지션 선행성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매주 발표하는 COT 리포트에는 CME 통화 선물의 투기적 순포지션이 공개된다. 원화 선물은 CME에 상장되어 있지 않아 엔·유로·멕시코페소를 대체 지표로 쓴다. 투기 포지션이 쌓일 때 원화 변동성이 뒤따라 올라가는지를 그레인저 인과 검정으로 확인한다.
H3 — 글로벌 충격에 대한 과잉반응
VIX의 일일 변화량을 글로벌 위험 충격으로 보고, 원화 수익률이 피어 통화보다 체계적으로 더 크게 반응하는지 측정한다. 단순 β 비교는 통화 고유 변동성 차이에 오염되므로 |β| / σ(ret)로 표준화한다. 또 시차별(당일·다음날·이틀 후) 반응과 VIX 급등일 vs 급락일 비대칭 반응을 분리해서 본다.
H4 — 변동성 체제 전환의 빈도
정상 시장에서 변동성은 매끄럽게 변하지만, 대규모 포지션 구축이나 인위적 개입이 있으면 변동성이 계단식으로 튄다. ruptures 패키지의 PELT 알고리즘으로 변동성 시계열의 구조적 전환점을 탐지해, 원화가 피어보다 더 자주 체제 전환을 겪는지 확인한다.
네 가지 결과를 0-1 범위로 정규화해 평균낸 "수상함 점수(Suspiciousness Score)" 하나로 최종 판단한다. 0.3 미만이면 🟢 낮음, 0.6 이상이면 🔴 높음, 그 사이는 🟡 중간이다.
데이터와 방법론
yfinance에서 일별·시간별 FX 데이터를, FRED에서 VIX를, CFTC 공식 데이터를 받아왔다. 특히 H1에서는 시간별(1h) 데이터를 써야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온다. 일별 OHLC만 쓰면 Yahoo Finance가 FX 통화쌍의 Open을 전일 Close와 거의 동일하게 처리하는 아티팩트 때문에, overnight gap이 99% 이상으로 찍히는 이상한 결과가 나온다. 첫 시도에서 이 함정에 빠져서 H1을 "시간대 분해" 방식으로 다시 짰다.
분석 기간은 2015년 1월부터 현재까지 약 10년이고, 인트라데이 데이터는 최근 2년(약 730일)만 사용했다.
H1의 의외: 원화는 "한국 장에서 가장 격렬하게" 움직인다
가장 먼저 기각된 건 H1이었다. 결과를 보자.
| USDKRW | 45.4% | 0.53× |
| USDJPY | 29.9% | 0.99× |
| EURUSD | 17.7% | 1.95× |
| USDTWD | 51.5% | 0.41× |
offshore_intensity는 "한국 장 밖의 시간당 변동성 / 한국 장 안의 시간당 변동성"이다. 1보다 크면 장 밖이 더 격렬하고, 1보다 작으면 장 안이 더 격렬하다.
원화는 0.53이다. 즉 한국 장이 열려 있을 때가 닫혀 있을 때보다 시간당 약 두 배 격렬하다. 유로는 정반대로 1.95인데 이건 예상대로다 — 유로는 유럽-미국 시간대가 주력 거래 시간이니까. 엔화는 0.99로 딱 중립이고, 대만달러는 0.41로 원화와 비슷한 패턴이다.
이 결과는 "글로벌 금융사가 역외에서 원화를 끌고 다닌다"는 가설을 직접 반박한다. 만약 싱가포르 NDF가 가격을 선도한다면 장 밖이 격렬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한국 장 시간에 원화 움직임이 집중된다. 원화의 가격 발견은 국내 세션에서 대부분 일어난다는 얘기다.
다만 한 가지 단서가 있다. "한국 장 시간"이란 국내 외환딜러와 한국 시장에 참여하는 외국인 투자자가 동시에 활동하는 시간이다. "장 안 = 국내 세력, 장 밖 = 외국 세력"이라는 단순 대응이 아니다. KOSPI에서 외국인이 대규모로 매매할 때, 원화 환전 수요도 한국 장 시간에 쏟아진다. 그래서 이 결과는 "외국 세력이 활동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외국 세력이 한국 시간대에 맞춰 활동한다"고 읽는 게 더 정확하다.
그래도 핵심은 바뀌지 않는다. 역외 선도 가설은 기각이다. H1 정규화 점수는 0.00.
H3의 발견: 원화는 "하루 늦게" 충격에 반응한다
H3가 이 분석의 진짜 발견이다. 세 가지 각도로 본 결과를 차례로 보자.
H3c — 표준화 반응: 원화가 1등
통화 고유 변동성으로 정규화한 |β0|/σ(ret) 지표를 보면:
| USDKRW | 0.015 | VIX 1단위에 1.5% 표준편차 움직임 |
| USDTWD | 0.014 | 원화와 거의 비슷 |
| EURUSD | 0.009 | 원화의 60% |
| USDJPY | 0.002 | 원화의 13% |
원화의 표준화 반응은 엔화의 8배다. 엔화는 전통적 안전자산이라 VIX와 반대로 움직이는 성향이 강한데, 그 영향이 원화 대비 약하게 나타난다. 반면 원화는 "VIX 1 단위 변화가 자기 표준편차의 1.5%만큼 움직이는" 구조다. 이건 통화 자체의 변동성 차이를 통제한 뒤의 수치라, "원화는 원래 변동성이 크니까 더 움직이는 게 당연하다"는 반박이 통하지 않는다.
피어 통화 평균 대비 1.75배 과잉반응. 이 지표에서는 원화가 확실히 도드라진다.
H3a — 시차별 반응
시차별 β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네 통화 중 원화만 혼자 다른 모양을 그린다.
| USDKRW | −0.00008 | +0.00087 | −0.00017 |
| USDJPY | −0.00001 | −0.00055 | +0.00019 |
| EURUSD | +0.00005 | −0.00005 | −0.00010 |
| USDTWD | +0.00009 | +0.00031 | −0.00002 |
원화의 당일 β는 −0.00008로 거의 0인데, 다음 날 β는 +0.00087로 갑자기 10배 이상 커진다. 그 다음 날엔 다시 잦아든다. 이런 "하루 지연 + 점프" 패턴은 다른 세 통화 어디에도 없다.
건전한 외환 시장에서는 모든 정보가 즉시 가격에 반영되어야 한다. VIX가 오르면 원화가 당일에 반응해야지, 하루 늦게 반응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이건 원화 시장이 글로벌 위험 충격을 실시간으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왜 이런 패턴이 생길까?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시나리오 A — 시간대 동기화 문제
VIX는 뉴욕 시간 기준으로 계산되고 뉴욕 장이 끝나야(한국 시간 새벽 5시경) 값이 확정된다. 반면 한국 장은 이미 오후 4시에 닫혀 있다. 그래서 "t일에 발생한 VIX 충격" 중 상당 부분이 한국 시장에서는 "t+1일 개장 후"에야 반영될 수 있다. 이건 조작이 아니라 시간대 불일치로 인한 구조적 지연이다.
시나리오 B — 역외가 방향을 제시하고 국내가 따라간다
VIX 급변 후 그날 밤 역외 시장(NDF)에서 원화 방향이 먼저 잡히고, 다음 날 한국 장이 열리면서 국내 딜러와 외국인 투자자들이 그 방향으로 포지션을 맞추는 패턴. 이 경우 H1 결과("한국 장 시간이 가장 격렬")와 연결하면 흥미로운 그림이 나온다. 즉 역외에서 방향이 결정되고, 한국 장에서 거래량과 가격 충격이 구현되는 분업 구조다. H1만 보면 "국내 주도"처럼 보이지만, 실은 국내가 역외에서 내려온 방향을 증폭시키는 것일 수 있다.
시나리오 C — 투기 자본의 관성 밀어내기
누군가가 원화 포지션을 방향성 있게 쌓는다면, 그 포지션 구축이 며칠에 걸쳐 분산되면서 충격이 당일을 넘어 다음 날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게 가장 "조작" 가설에 가까운 해석이다.
문제는 이 세 시나리오를 이 분석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요한 건 시간대를 정밀하게 정렬한 고빈도 데이터와, 원화 NDF 포지션 변화 직접 관측이다. 둘 다 개인 연구자가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그러나 확실한 건 하나 있다: 원화는 피어 통화가 보이지 않는 특이한 지연 반응 패턴을 보인다. 이 패턴 자체가 이상 신호다.
H3b — 비대칭 반응: 원화는 "안도 랠리"에 더 크게 반응한다
VIX 상위 20%일(공포 급등)과 하위 20%일(공포 해소)을 분리해서 따로 회귀해봤다.
| USDKRW | +0.00002 | −0.00044 | −0.00041 |
| USDJPY | −0.00022 | +0.00037 | −0.00015 |
| EURUSD | +0.00011 | −0.00010 | +0.00002 |
| USDTWD | +0.00016 | +0.00001 | +0.00015 |
일반적 이머징 통화는 "공포 때 얻어맞는" 비대칭성을 보인다 — 공포 급등 때 크게 약세가 되고, 공포 해소 때는 천천히 회복한다. 그런데 원화는 정반대다. 공포 급등일에는 거의 반응이 없고(+0.00002), 공포 해소일에 강하게 반응한다(−0.00044, USDKRW 하락 = 원화 강세).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이것이다: 원화의 평상시 환율에는 이미 상당한 "만성적 위험 프리미엄"이 얹혀 있다. 시장이 평상시에도 원화에 어느 정도의 불안감을 가격에 반영해두고 있어서, 공포가 추가로 커져도 더 얹을 여지가 별로 없다(β_up이 0). 반대로 공포가 해소되면 이 프리미엄이 풀리면서 원화가 빠르게 강세로 튕긴다(β_down이 크게 음수).
이 해석이 맞다면, 2025~2026년 원화 고환율 국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원화가 단순히 "공포 때마다 얻어맞고 있다"가 아니라, 이미 약세 편향이 상수로 깔려 있는 통화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말한 "고환율 뉴노멀"이 이런 현상을 가리키는 건지도 모른다.
H4 — 체제 전환은 딱히 특이하지 않다
변동성 체제 전환 횟수는 원화 4회, 엔·유로도 똑같이 4회, 대만달러만 1회(강한 관리환율 때문)다. 원화가 피어 통화보다 유별나게 체제 전환이 잦지는 않다. 체제 전환 관점에서는 원화가 평범하다.
최종 점수 0.32 — 조작은 아니다
네 가설을 종합한 수상함 점수는 0.32로 🟡 중간이다. H2가 측정 실패로 빠졌고(cot_reports 패키지 포맷 변경으로 데이터 파싱 실패), H1과 H4는 각각 0.00과 0.20으로 낮게 나왔으며, 오직 H3만 0.75로 높게 튄 결과다.
이 점수는 "원화가 조작당한다"는 강한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역외 지배도 없고, 체제 전환 이상도 없다. 단 하나, 글로벌 위험 충격에 대한 원화의 반응이 다른 통화들과 다르다는 것만 확실히 잡혔다.
그러나 이게 더 불편한 진실이다
"조작"이라는 단어는 강하지만, 그래서 쉽게 기각된다. "누가" "어떻게" 조작했는지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분석이 찾은 건 그게 아니다. 찾은 건 원화라는 통화 자체의 구조적 취약성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 원화의 가격은 국내에서 발견된다 (H1). 역외가 주도하지 않는다.
- 그러나 원화는 글로벌 위험 충격에 피어 통화보다 과잉반응한다 (H3c, 1.75배).
- 그 반응이 당일이 아니라 다음 날에 집중된다 (H3a). 시장이 충격을 실시간으로 소화하지 못한다.
- 원화는 평상시에 약세 프리미엄을 안고 있다가 공포 해소 국면에 풀리는 패턴을 보인다 (H3b). 만성적 비관이 가격에 상주한다.
이 네 가지를 하나의 서사로 엮으면 이렇다.
원화는 "체력이 약한 통화"다. 투기 자본이 원화를 특별히 노려서가 아니라, 충격을 제때 소화할 시장 두께(depth)와 처리 속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같은 충격에도 더 흔들리고, 더 늦게 반응하고, 더 오래 할인된 상태로 남는다. 누가 때려서가 아니라, 얻어맞으면 더 아픈 체질이다.
이건 "글로벌 금융사 탓"이라는 서사보다 훨씬 불편한 결론이다. 탓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체질을 바꾸려면 외환시장 유동성을 키우고, 가격 발견 속도를 높이고, 한국 자산에 대한 구조적 신뢰를 쌓아야 한다. 이건 하룻밤에 되는 게 아니다.
한계와 남은 질문
이 분석이 답하지 못한 것들을 솔직하게 적어둔다.
H3a의 세 시나리오를 구분할 데이터가 없다. 시간대 동기화 문제인지, 역외 선도인지, 관성 밀어내기인지 이 분석만으로는 알 수 없다. 이를 구분하려면 1분 단위 FX 체결 데이터와 NDF 포지션 데이터가 필요하고, 둘 다 블룸버그·로이터 유료 계약이 있어야 접근 가능하다.
H2가 실패했다. 원화 자체의 선물 포지션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고, 대체 지표로 쓴 엔화·유로·페소 COT 파싱도 패키지 버그로 실패했다. 원화에 직접적인 투기 포지션 증거는 못 잡았다.
"만성적 약세 프리미엄" 가설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H3b가 보여준 비대칭 패턴은 여러 해석이 가능한데, 그중 하나를 고르려면 옵션 시장의 리스크 리버설(risk reversal) 스큐나 원화 NDF 포워드 프리미엄 시계열을 함께 봐야 한다. 이것도 공짜 데이터로는 어렵다.
시차 문제는 측정 자체의 문제일 수 있다. VIX와 KRW의 동시성 문제는 시간대 정렬로 부분적으로 해결되지만, 완벽하진 않다. VIX 마감 시각(뉴욕 16:15)과 원화 종가(한국 15:30)를 같은 날로 묶으면 사실상 원화가 VIX보다 먼저 닫히는 구조다.
마무리
"원화가 조작당하고 있다"는 직관을 검증하려 네 가지 가설을 데이터로 돌렸는데, 결과는 직관과도 상식과도 달랐다.
역외 세력 가설은 기각됐다. 원화의 가격 발견은 국내에서 일어난다. 대신 데이터가 가리키는 건 훨씬 덜 낭만적인 진실이다 — 원화는 시장 체질이 약해서, 같은 충격에 더 아프고, 더 느리게 회복하고, 평상시에도 약간 앓고 있는 상태의 통화다. 이걸 "조작"이라 부르면 실상을 놓친다. 해결책도 달라진다. "외국 세력을 막아라"가 아니라 "시장 깊이를 키워라"가 답이 된다.
분석이 끝나고 남은 가장 큰 질문은 H3a의 "하루 지연"이다. 만약 이게 진짜 역외 선도 + 국내 추종 패턴이라면 — 그리고 그걸 증명할 수 있다면 — 원화 외환시장의 미시구조를 뜯어볼 여지가 크다. 이건 다음 분석의 주제가 될 것이다.
결과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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